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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중화민국과 대만의 역사관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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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얘들아? 그동안 연재하던 동북아 해양편을 잠시 중단하고 오늘은 현 대만의 전신인 중화민국과 이들로 부터 유래된 현 대만의 대 한반도 역사관에 대하여 글을 써보도록 할께.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지금 대륙 짱깨 못지않게 섬짱깨 역시 중화사상에 만만치 않게 찌들어 있는 놈들이고 실제로 독립을 전후로 한국의 독립에는 지금의 중공뿐만 아니라 이 중화민국 역시 대단히 위험한 존재였데, 


 단지 대륙 짱깨보단 덜하단 이유로, 국가적 역량이 너무 뒤쳐지고 본토짱깨와 척을 진다는 이유만으로 이 섬짱깨들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만 너무 부각되는게 안타깝다고 생각해서야


때문에, 이 글을 통해 중화민국이든 인민공화국이든 중화사상에 찌든건 똑같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부족한 지식과 의견을 긁어모아 이렇게 글을 써볼께.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전문적으로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도가 아니며, 다만 내가 아는 정보와 취합가능한 정보 선에서 이들이 한반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생각했으며 이와 연관되는 케이스와 정보, 의견들을 짚는 정도로 넘어갈께.




글을 진행하면서 틀린 정보가 있다면 지적 감사하게 받겠다 


그럼 시작할께




글의 순서는


1. 중화민국이란? 

2. 중화팽창주의와 쑨원의 역사관 

3. 대만의 대 한반도 역사관

4. 요약



순으로 진행해보도록 할께 






1. 중화민국이란? 


 중화민국은 신해혁명으로 인해 청조가 멸망한 이후 중국대륙에 세워졌던 나라야. 초창기 임시총통은 손문, 즉 쑨원이라고 해서 신해혁명의 주역이자 청조를 박살내고 대륙을 다시 한족의 영향권으로 가져온, 한족 입장에서는 최고의 영웅이지. 

실제로, 현 대륙을 차지하고 있는 중공 역시 쑨원은 인정하고 업적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올해 3월에 끝난 중국 공산당의 양회 중 정협에서도 쑨원에 대해 칭송을 하기도 하였어.


 중화민국의 역사는 초창기부터 매우 시끄러웠어, 위안스카이가 쑨원과의 약속을 어기고 군벌들을 이용하여 정권을 장악하는 한편 자신의 황제로 취임하여 중화제국을 세우려고 시도하기도 하였어 


 장개석이 전권을 잡은 이후 부턴 여러차례 국공내전을 치루면서도  일본에 대항하여 국공합작으로 전쟁을 치루기도 하였으나 (사실 국민당이 90% 이상은 대일항전을 담당했음)


 결국 내부적인 부패와 군벌들에 대한 통제력 약화가 겹처 중국공산당에 밀려 지금의 대만으로 후퇴하게 되었지. 


 한때는 2차대전 승전국으로 UN의 상임이사국이기도 했던 나라지만, 국공내전에서 패하여 대만으로 밀려난 이후, 급격한 중공의 팽창과 미국에 대한 통수치기로 인해 결국 상임이사국에서도 밀려나고 지금은 나라취급을 못받는 신세로 전락을 해버리고 말았어.  






2. 중화팽창주의와 쑨원 




 손문( 孫文 ), 중국식 발음은 쑨원으로써, 앞서 이야기 했듯 신해혁명의 주역이자 중화민국의 초대 임시총통 이었던 인물이야. 


 역사를 공부했다면 쑨원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쑨원은 유명한 삼민주의 ( 三民主義 ), 즉 민족, 민권, 민생 을 주창하였던 인물이기도 해.


민족주의를 일으켜 내부적으로는 청조와 만주족을 타도하고 외부로는 서양열강의 침탈을 막아 중화민족의 자유로운 독립을 표방하였고

민권을 통해 기존의 봉건질서가 아닌 민주주의를 받아 국민에게 선거권, 파면권, 제헌권, 복결권의 4가지 권리를 보장하려 하였으며, 이를 통해 현대 민주주의의 삼권분립보다 세분화된 5권 입법, 사법, 행정, 고시, 감찰의 5권 분립을 주창하기도 하였어 

마지막으로 민생을 표방하고 민족의 교육과 사회적 인식을 높이려고 하였지 







 삼민주의 사상에서 볼때, 쑨원은 어떻게 보면 계몽된 지식인 같아 보이고, 우리의 임시정부와의 관계성으로 인해 친근해보이지만, 한편 으로 삼민주의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했듯,, "중화민족주의" 를 강력하게 부르짖었던 인물이였으며, 이는 국민당의 정서에도 그대로 반영되왔고,  

그의 팽창주의와 민족주의는 한국의 독립에도 굉장히 위험했던 사상이었어


 쑨원과 같은 중화민족주의 중화팽창주의 입장에서보면 대륙을 중심으로 일본을 제외한 대륙 주변의 나라들은 사실상 자기들의 속국이자 회복해야할 영토 중 하나로 인식 되었었던게 사실인데, 


이를 알아볼 수 있는 예시가, 1921년에 했던 연설에서 반영되어 있어.


 

" 중국이 상실한 영토는 가장 최근의 것부터 말하자면 위해위(威海衛)와 여순(旅順),대련(大連),청도(靑島),홍콩,그리고 광주만 등지가 있고....


그 이전의 것으로는 한국(高麗)과 대만,팽호(澎湖)열도가 있으며 그전에 잃어버린 것으로는 버마와 베트남이 있고...더 이전의 것으로는 흑룡강지역과 우수리가 있다".




여기서, 한국과 대만 그리고 팽호열도가 언급된 이유는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 조선의 독립과 대만섬, 그리고 팽호열도의 할양이 일본에 강제로 넘어갔으며, 이를 자신들은 반드시 수복해야 한다는걸 공개적으로 천명했던 거나 마찬가지야. 



거기에 더불어, 쑨원은 1924년에 일본 고베에서 열린 "대아시아주의" 연설회에서 중국과 일본 양국이 서방열강에 맞서 아시아의 주도권을 쟁취해야 한다는 말을 해. 


물론, 이 시기는 한반도가 일제강점기 였던 시절이며 대다수의 동남아 국가가 서방의 식민지화가 되어버려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상 아시아에서는 중국외에는 일본만이 주권국이라는 중화중심적인 연설을 아예 대놓고 하였으며 쑨원의 중화사상이 다시 한 번 나타난 거야. 






이러한 쑨원의 중화중심적 사상은 국민당의 정서와 강령에도 그대로 반영되었고,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였으며 


이미 이전부터 임시정부를 지원해왔던 장개석과 국민당은 


카이로선언-포츠담회담 기간 전 열렸던 중화민국 군벌 모임인 국민회의에서 


기존 카이로에서의 한국독립의 지지를 철회하며 도로 중국에 귀속시키자는 의견이 처음 제기 되었고 


포츠담에서는 결국 일본과의 모든 불평등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 텐진 조약)을 모두 파기하려 시도해.



즉, 톈진조약으로 영향력을 상실했던 동남아 지역에서의 영유권을 재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 강제로 빼았겼던 조선반도와 대만, 팽호열도 등을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한다는 걸 주장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쑨원의 중화적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였고 이를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지.



결국 이로 인한 회담상의 입장 차이는 한반도의 분단과 신탁 통치 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어, 중화민국의 주장으로 인해 일제 강점기 이전 한반도에는 주권을 가진 한국인들만의 "자주국" 이 없었다고 인정되었으므로, 결국 미-소 양국이 신탁통치를 하게 되는데 아주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지.




이러한 국민당 내부의 기류는 중화민국이 패퇴하여 대만으로 밀려간 후,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을때도 바뀌지 않았어.


6.25 전쟁이 발발하고, 맥아더는 중화민국의 UN군 참전을 통한 지원을 대만 측에 요청하였으나 오히려 장개석은 6.25전쟁은 국공내전의 연장선이니 


이 기회를 틈타 미국과 중화민국군은 연합하여 상해 일대로 상륙하여 진공하자는 엉뚱한 제안을 하지 


자, 뭔가 이상하지 않아? 당시 한반도에는 엄연히 대한민국이라는 주권국가가 건국되어 있었는데 왜 6.25를 자국의 국공내전의 연장 으로 봤을까? 


간단해, 쑨원과 기존 중화민국의 사상에 따라 북괴를 중공의 하부 공산당조직으로 보았고, 대한민국은 중화민국의 하부조직이자 부속기관 으로 봤기 때문이야. 


한반도가 자신들의 영토라는 인식이 없다면 결코 국공내전의 연장선이라는 주장은 할 수도 없고 하기도 힘들어.






한마디로 지금의 짱꺠 공산당 새끼들과 다를바 없던게 중화민국, 현재의 대만이 고, 이는 후에 중공이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의 중공의 영토욕심에도 영향을 끼쳐.


번외 이야기지만, 현재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 역시 중화민국이 승전 후 이 일대에 지정한 해양 11단선을 이후 중공정부가 9단선으로 줄이기 시작하며 시작된 거야. 







3. 대만의 대 한반도 역사관 



대만의 대 한반도 역사관에 대해 서술하기 전에 한번 공유해 보고 싶은 사진들이야 


아까 올라왔던 몽골의 독립이야기를 보고 이야기를 해보려 해. 



첫번째 사진은 대만 해병대 엠블럼으로써, 대륙을 그려 넣은 것은, 대만 해병대가 반드시 본토 수복의 선봉에 서겠다는 것을 의미해. 


몽골을 아예 자기들의 강역으로 설정하고 그려넣은 걸 볼 수 있어.




두번째 사진은 대만 사회과부도 교과서로써 지금까지도 대만은 아예 몽골은 자국의 영토라고 본토 짱깨들보다 더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어. 

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저 사회과부도에 한반도도 포함되었었어. 


지금은 어느정도 희석되었으나, 80년대 까지 한반도는 중화민국의 수복 영토 대상 에 불과했었지.



몽골의 케이스를 들면서 다른길로 빠졌었는데, 현재 대만의 대 한반도 정책과 역사관을 요약해보자면, 


" 40년대나 50년대나 60년대나 70년대나 80년대나 그리고 지금이나 대만은 본토 짱깨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속국이자 반드시 수복해야할 대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고 이는 변함이 없다.. " 


그에 대한 첫 번째 일화로, 사진에 나오는 인물은 오른쪽이 마잉주 전 총통이고, 왼쪽의 인물이 마잉주 정권시절 안보정책을 담당했던 소취라는 인물로써 


이 사람은 공개석상에서 또 한국을 대만의 식민지로 취급했던 인물이야. 


국방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저런 언급을 했다는 것은 여전히 공공연한 대만의 한국에 대한 역사관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지 





두 번째 사례는 2011년 9월 8일에 대만 외교부에서 밝혔었던 "중화민국 영토주권의 역사적, 국제법적 근거 재천명" 에서 나타난 한반도에 대한 역사관이야. 


지금은 대만 외교부 측이 삭제한 상태지만, 대략 남아있는 약간의 기사를 보면 내용은 다음과 같아 


대만 외교부는 7일 “국내외 각계는 중화민국(대만)이 1945년 10월25일부터 실질적으로 대만에 대한 일체의 주권을 회복하고 행사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 외교부는 또 “중화민국이 대만을 실효 통치한 것은 역사적 사실일 뿐 아니라 국제법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천명했다. 


대만 외교부의 이날 발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만과 그 부속도서의 지위를 규정한 포츠담 선언과 일본의 항복문서가 갖는 국제법적 효력에 대해 제기된 일각의 의문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 외교부의 발표는 대만과 그 부속도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중화민국 영토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다. 

대만 외교부는 하루 전 발표한 성명에서도 대만과 중화민국의 역사적 지위에 대한 공식 해석을 재천명했다. 


성명은 청나라 정부가 1895년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조약(馬關條約)에 의거해 대만 본도와 펑후(澎湖)열도를 일본에 할양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해혁명을 통해 1912년 성립된 중화민국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청나라의 법통과 국제적 법인격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대만과 펑후열도는 중화민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http://www.roc-taiwan.org/kr/fp.asp





이 주장을 압축해서 설명하자면, "중화민국은 시모노세키 조약과 톈진 조약 등 외세와의 불평등 조약을 모두 청산하였고, 이에 근거하여 대만섬과 펑후열도 등에 대한 영유권을 합법적으로 인정받았다" 


로 볼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살펴보면 대만의 공식적인 대 한반도 역사관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부정함으로써,


당시 조약때 명시한 조선의 독립 역시 고의든 아니든 송두리째 부정하고 여전히 자신의 식민지로 규정하는 것을 2011년, 6년전에 공식적으로 발표해버린거나 다름이 없지 


대만의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한반도에 있는 대한민국과 북괴 새끼들은 자신의 영토를 강점한 괴뢰 정부들이나 다름이 없어.




자 이제 마지막 챕터로 넘어가 보도록 할께.







4. 요약


그동안 앞에서는 중화민국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고 쑨원과 중화팽창주의의 관계, 그리고 현 대만의 대 한반도 역사관 등에 대하여 알아보았어

이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1. 쑨원은 중화팽창주의자, 중화민족주의자 였으며, 한반도를 식민지로 보았다.

2. 쑨원의 삼민주의는 결코 상호평등적 삼민주의가 아닌 전통적 중화중심사상에 입각한 타국과 수직관계의 사상이었다. 이늕 중화민국 뿐만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상과 국가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3. 중국공산당 뿐만 아니라, 중화민국의 국민당 역시 한반도를 식민지 취급하기는 마찬가지였고 포츠담 회담에서의 중화민국의 영토욕심은 직간접적으로 

   한반도 분단과 한국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4. 중화민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이러한 기류는 현 대만정부에서도 바뀌지 않고 있다. 



등 이야. 


이 쯤에서 글을 마치도록 할께. 부족하고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