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Batman Dark 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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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것은 뭐란 말인가.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쿵쾅거리게 하다 일순 오그라들게 하고 또한 축축히 젖게 하는, 꼼짝달싹못하게 나를 쥐락펴락하는 저 깊은 어둠 속의 그것은. 이성과 광기에 휘감기어 내몰려버린 나는 이것이 차라리 끝나지 말기를 기도했다.
물론 그것은 모든 악행의 도시 ‘고담’이 아닌, 크리스토퍼 놀란 이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걸작, 영화 ‘다크 나이트’의 세계다.
자신의 눈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어린 브루스 웨인은 일생을 모든 종류의 범죄와 맞서 싸우고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데 바치리라 부모님의 영혼에 맹세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 어둠 속에서 단죄의 날개를 펼치지만 오히려 ‘악’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증식되고, 정의는 웃음거리가 되어 간다.
배트맨이 악에 맞서 정의를 지키려 하는 와중에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폭력과 파괴는 그가 고담의 또 한명의 무법자로 치부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배트맨이 없어야만 더욱 활개를 펼칠 범죄조직은 더욱 강력하게 그에게 도전해오면서 진정 원하는 도시의 평화는 멀어져만 감에, 어둠의 기사는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랑하는 사람과도 함께 할 수 없는, 이 고독한 영웅은 황금보다도 강한 자신의 신념에 상처를 입어 가지만, 레이첼의 연인, 하여 자신의 연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강직한 지방검사인 하비 덴트에게서 영웅의 모습을, 자신이 어둠의 기사라면 하비는 어쩌면 백기사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든든한 조력자 고든반장의 부하들까지 갱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구원받지 못하는 이 참담한 도시에서 배트맨이 어떻게 본래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그 마저,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그녀의 죽음과 맞바꿔진 자신의 생존, 악과 손잡은 무리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심은, 범죄와 싸우기 위해 못할 것 없다 믿었던 하비 덴트 마저 처참히 무너뜨리고 만다. "영웅으로 죽거나, 살아서 악당이 되는 것". 하비 덴트의 복수심을 보다 들끓게 하여 실로 강인한 인격체, 또 다른 영웅이었던 그역시 악한으로 만들어버린 중심에는, 세상의 모든 불신과 파괴, 절망감을 인간에게 던져주려는 바로 그 ‘녀석’이 있었다. 혀를, 찢어진 입 주위로 뱀처럼 날름거리며 이죽대는, 지옥 밑바닥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웃어제끼는. 바로 배트맨의 숙적 ‘조커’다.
5명이 결탁하여 은행을 털어도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 차례대로 서로를 죽이고, 1명만이 살아남는 것. 이것이 바로 조커가 바라는 세계다. 그러나 조커가 정말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바로 ‘불신의 실천’이자 ‘인간의 사악함’, 그리하여 ‘혼돈’이라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일. 다이너마이트, 화약. 휘발유 등으로 이루어지는 파괴 그 자체를 원하고, 인간의 마음을 교란시켜 불신과 절망감에 빠지게 하여 결국 그 심연의 악을 끌어올리는 것, 그것을 무엇보다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하는 녀석. 자신의 찢어진 입의 내력을 때마다 다르게 늘어놓는 세상에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조커는 ‘절대악’ 그 자체다.
영웅의 고귀한 신념을 조롱하고 인간의 선을 부정하는 조커는 무고한 시민과 경찰의 목숨을 담보로 배트맨에게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내길 요구하고, 고담 시민들은 이 두려움과 분노를 오히려 배트맨에게 토해낸다. 어둠에 맞서기 보다 그것 밑에 차라리 숨죽이는 것을 택한 그들은 그저 살아있길 원하는 평범한 인간들일뿐.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계속 엇나가고, 어떤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혼란 속에 내던져진 영웅은 결국 극단적이고 옳지않은 방법까지 행하고 만다. 투페이스가 된 하비 덴트의 최후를 목도하고 조커가 이겼다는, 고든형사의 허탈한 말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그러나 이러한 무력감 속에서도 묵묵히 떠오르는 것은 희망이다. 어둠의 기사는 기꺼이 그 빛을 위해 자신을 더 깊은 어둠으로 내몰며, 투페이스를 남아있는 반쪽, 영웅의 얼굴로 되돌려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가장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가장 깊은 어둠으로 향하는 그는 혼자는 아닐 것이다. 조커의 가장 악랄한 시험에도 기폭장치는 그 아무에게도 눌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살아있길 원하는 평범한 인간들일 뿐이었음에도. 인간임에 울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인간은 그 한없는 나약함에도 또한 포기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존재임에.
이 영화는 ‘미쳤다’.
어떠한 망설임없이 걸작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고담시는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고 거대한 어둠으로 우리를 조여온다. 특히나 IMAX으로 만나는 시종 박력있고 긴장감 넘치는 영상과 음악은 온 몸을 휘감아온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독의 능수능란한 연출력은 그야말로 놀란, 또 놀란. 크리스토퍼.
이 흠잡을 데 없는 걸작의 가장 대단한 점은, 이 기나긴 여름 블록버스터에서 우리가 가장 집중한 것이 발달한 액션과 CG, 수트와 차로 대변되는 배트맨의 멋진 외견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우리를 내내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야기’라는 것이다. 152분동안 우리의 눈과 귀는 바로 그들의 현실과 그들의 대화에 온전히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배트맨의 수트와 오토바이가 멋지지 않은가? 배트맨이 고담의 하늘을 유영하는 것이 가슴뛰지 않는가? 악당을 강력한 주먹으로 무찌르는 것 또한 통쾌하지 않은가? 물론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히어로물 특유의 비현실적임은 이 장대한 이야기 속에서 엷어지고 심도있는 리얼함으로 다가온다. 어둠의 기사는, 영웅 블록버스터 장르를 훌쩍 넘어 그 누구도 가지 못한 경지로 품위있게 비상해 버렸다.
또한 이 영화를 절대 걸작일 수 밖에 없게 만든, 그 화룡점정은 슬프게도 이제는 세상에 없는 조커, 히스 레저다. 늘 연기로 최고의 칭찬을 받던 젊디 젊은 29살의 그 배우는, 이 영화에서 너무나 가혹하게도 최고의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목소리를, 그런 얼굴을, 그런 표정을, 그런 웃음을 어떻게 누가 할 수 있는가. 조커의 모습에 뒷덜미부터 소름이 좌악 끼치다가도 저런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눈이 뜨거워짐은 어쩔 수 없다.
저 광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슬픔을 그저 가슴으로 묵묵히 이겨내는 듯한 그에게, 에니스에게서 어떻게 조커의 모습이 나오는 것인가. 나는 정말 알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히스 레저가 연기하는 조커의 존재감은 이 영화 전체의 존재감과 거의 맞먹는다. 모건 프리먼, 게리 올드만 같은 최고의 배우들과 무엇보다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그 역을 잘해내주고 있는 멋진 크리스찬 베일이 있지만, 이 걸작도 히스 레저 없이는 완벽해 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왜 그렇게 심각하지.” 하며 이죽거리던, 입을 연신 오물대던 그의 모습이, 어린애처럼 걸으면서 폭탄을 터뜨리던 그 모습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음에도 그의 연기에는 그저 위대했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구나. 한탄은 아무래도 가시지 않는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또 애도한다.
걸작을 만난 벅참과 그와 헤어진 슬픔으로 ‘배트맨 : 다크나이트’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히스 레저여, 영원히. 배트맨이여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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